내가 본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추격자>이다. 너무 리얼한 연출에 기가 질려 후속작 <황해>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런데 <곡성>에서는 잔인한 장면이 별로 없다는 소문을 듣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는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즐겨본다.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은 마지막 내레이션이 나올 때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끝까지 봤다. 무섭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보고 말았다. 학교 가는 길은 산길이어서 고개만 살짝 돌려도 무덤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동네 아이들과 함께 등하교를 했지만, 가끔은 혼자 걸어와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분위기도 무섭지만 내 머리속에는 간밤에 본 <전설의 고향> 영상이 자꾸 되풀이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돌아보지마!' 공포체험장이었다. 땅거미가 어스름한 오후에 걸음에 나살려라하고 죽어라 뛰면 뒤에서 흰 소복을 입은 여인이 '같이 가'하는 듯해서 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그런 공포를 오랜만에 영화 <곡성>에서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은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온몸에 전기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압도적이다못해 충격적이다. 브루스윌리스가 "내가 귀신?"임을 깨닫는 <식스센스>와 니콜키드먼이 "We're not dead!"를 외치는 <디아더스>의 반전보다 훨씬 치밀하다. 한국영화에서 좀체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영화였다. 소재, 연출, 음악, 시나리오, 이야기, 배우, 연기 등 영화 제작 요소들이 잘 맞춘 퍼즐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말대로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곽도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나즈막히 읊조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를 본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해 본다.
"헐리우드에 크리스토퍼 놀란이 있다면 한국에는 나홍진이 있다."
이런 영화를 충무로에서 많이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홍진 #곡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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