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이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람 이름에 담긴 이야기보다 훨씬 많고, 때로는 더 놀라울 때도 있습니다. 어떤 장소는 아주 오래된 이름을 품고 있고, 또 어떤 곳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이름을 가졌어요. 그 이름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붙여진 경우가 많죠. 대륙 이름을 살펴보면, 일부는 까마득한 옛날, 세상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살던 사람들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Europe’와 ‘Asia’라는 이름은 오래전 셈족(Semitic) 출신 선원들이 붙인 거예요. 이들은 에게해(Aegean Sea)를 오가며 항해했지만, 그 바다를 벗어나는 모험은 하지 않았죠. 그들에게 서쪽의 모든 땅은 ‘Ereb’였는데, 이는 그들 말로 ‘일몰(sunset)’ 또는 ‘서쪽(west)’을 뜻했고, 동쪽 땅은 ‘Acu’라 불렀습니다. ‘일출(sunrise)’ 또는 ‘동쪽(east)’을 의미했죠. 나중에 사람들이 이 땅들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이름이 조금 바뀌어, 지금의 거대한 대륙 ‘Europe’와 ‘Asia’로 남았어요.
‘Africa’도 오래된 이름이지만, 앞선 두 이름만큼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dark continent)’이라 생각하며, 그 대부분이 최근에야 백인들에게 알려졌고 원주민 흑인들과 함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아프리카 북부는 로마 제국에서 가장 문명화된 지역 중 하나였어요. 그보다 더 이전에는 그 일부가 카르타고(Carthage)라는 나라에 속해 있었는데, 나중에 로마에 정복당했죠. ‘Africa’는 원래 카르타고식 이름으로, 카르타고 주변 지역을 가리켰어요. 로마인들이 처음 그렇게 불렀고, 곧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확장됐습니다.
‘America’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얻었어요. 이 거대한 대륙은 15세기에 발견됐는데, ‘어둠의 바다(Sea of Darkness)’를 처음 건넌 대담한 스페인 사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니라, 본토에 처음 발을 디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Australia’는 ‘남쪽 땅(land of the south)’을 뜻하며, 16세기에 서쪽 해안에 처음 도착한 포르투갈과 스페인 선원들에게서 비롯됐어요. 그들은 내륙으로 들어가거나 정착하지 않았지만, 초기 지리학자들이 만든 기묘하고 부정확한 지도에 ‘Terra Australis’라 적었죠. 이후 영국인들이 마지막으로 이 대륙을 탐험하고 식민지로 만들면서 ‘Australia’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어요. 이 라틴어 이름은 중세 시대에 학자들이 책과 지도에 라틴어를 썼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현대의 거대한 대륙이 오래된 라틴어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거예요.
나라 이름에도 많은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유럽 나라들을 예로 들어볼게요. ‘England’는 앵글족(Angles)의 땅을 뜻하는데, 이로써 로마인들이 브리튼섬을 떠난 뒤 앵글족이 주요 민족으로 섬에 건너와 정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섬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이름을 붙였죠. 또 다른 북부 민족인 프랑크족(Franks)은 ‘France’라는 이름을, 벨가에족(Belgæ)은 ‘Belgium’이라는 이름을 남겼어요. ‘Britain’의 더 오래된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잘 쓰이지도 않았어요. 사실 중세보다 현대에 더 많이 사용되며, 특히 시나 아름다운 문장에서 주로 보입니다. 다음 시에서 ‘Englishman’ 대신 ‘Briton’이 쓰였죠: “Britons never, never, never shall be slaves.” “브리튼인은 절대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Briton’은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웨일스인을 뜻하기도 하고, 영국과 관련된 모든 것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Great Britain’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의미해요. 1702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잉글랜드와 합병되면서 새로운 ‘국가(nation)’를 설명할 이름이 필요했고, 그렇게 ‘Great Britain’이 생겼습니다. 또 ‘United Kingdom’은 1804년 아일랜드 의회가 잉글랜드에 합병되며 ‘Great Britain’과 아일랜드를 함께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로마 시대에 ‘Gaul’과 ‘Britain’이라 불리던 ‘France’와 ‘England’가 제국 멸망 후 어떻게 이름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중해 주변 나라들은 대부분 옛 이름과 언어를 지켰어요. ‘Italy’, ‘Greece’, ‘Spain’은 모두 예전 이름을 유지했죠. 새로운 민족들이 이 땅에 많이 들어왔지만, 잉글랜드에서처럼 모든 걸 바꾸지 않고 옛 주민들의 방식과 언어를 배웠어요. 당연히 고유한 이름도 지켜졌습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대개 그곳에 정착한 민족에게서 이름을 얻었어요. ‘Germany’(로마 시대의 ‘Germania’)는 게르만족 대부분이 정착한 지역입니다. ‘Saxony’, ‘Bavaria’, ‘Frisia’ 같은 독일의 일부 지역은 색슨족(Saxons), 바이에른족(Bavarians), 프리지아족(Frisians)이 정착하며 이름 붙여졌어요. ‘Austria’는 독일어 ‘Osterreich(동쪽 왕국)’에서 왔고, 반면 ‘Holland’는 땅의 특징에서 비롯됐습니다. ‘holt(숲)’와 ‘lant(땅)’가 합쳐진 이름이에요. 작은 나라 ‘Albania’의 ‘Alba’는 ‘하얀(white)’을 뜻하는데, 산이 눈으로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대 마을 이름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 중 하나인 ‘Rome’은 그 이름의 의미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많았어요. 가장 그럴듯한 설은 ‘강(river)’을 뜻하는 고어에서 왔다는 겁니다. 초기 로마인들에게 도시를 티베르(Tiber) 강변에 세운 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기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건 당연했을 거예요.
문명 초기, 강기슭은 마을을 짓기에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물을 얻고 쓰레기를 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주요 요소 중 하나도 티베르 강의 위치였어요. 바다에서 충분히 멀어 초기 해적의 침입에서 안전했고, 다른 육지와 교역할 만큼 가까웠죠. 그래서인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 이름에 ‘강’이라는 단순한 뜻이 담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대 세계의 다른 위대한 도시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어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은 정복한 땅마다 도시를 세웠고, 그 이름은 지금도 남아 그의 기억을 이어줍니다. 아프리카 북부 해안의 ‘Alexandria’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어요. 그가 죽은 뒤 더 문명화되며, 그가 존경하고 모방하려 했던 그리스 도시들보다 중요한 곳이 됐습니다. 이제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의 중심지가 아니라 바쁜 항구일 뿐이지만, 그 이름은 그가 그리스 학문과 문명을 유럽과 아시아에 퍼뜨리려 했던 위대한 업적을 떠올리게 합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또 다른 도시 ‘Bucephalia’는 인도 북부에 자리 잡았지만 나중에 쇠락했어요. 그가 인도 산맥을 넘어 놀라운 행진을 할 때 세운 곳으로, 가장 아끼던 말 ‘Bucephalus’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 말은 전투 중 다쳐 죽었고, 그 무덤 위에 도시가 지어졌어요. ‘Alexandria’만큼 흥미롭진 않지만, 너무 빨리 쇠퇴했기에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고대 도시 중 하나인 ‘Constantinople’도 위대한 통치자의 이름을 따왔어요.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북쪽에서 새 나라들이 밀려들 때,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를 대신할 새 수도를 정했습니다. 그는 동쪽의 장엄함과 방식을 사랑했기에, 고대 그리스 식민지 ‘Byzantium’을 골랐어요. 이곳을 교회, 극장, 목욕탕이 있는 새 로마로 탈바꿈시켰고, ‘Constantinople(콘스탄틴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장소 이름은 거의 언제나 그 역사를 말해줍니다. 영국 마을 이름을 떠올리면, 많은 이름이 비슷한 방식으로 끝난다는 걸 알게 됩니다. ‘London’처럼 ‘don’으로 시작하거나 끝나는 이름, ‘caster’, ‘chester’, ‘ham’, ‘by’, ‘borough’, ‘burgh’로 끝나는 이름들이 많죠.
‘don’으로 시작하거나 끝나는 장소는 로마인에게 정복당하기 전 브리튼인(Britons)에게 중요한 곳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브리튼인은 세 종족으로 나뉘어 흩어진 마을에서 살았지만, 각 종족은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인 작은 요새 ‘dun’을 갖고 있었어요. 적의 공격을 받으면 거기로 피신했죠. ‘London’은 현대 세계의 거대한 도시지만, 원래는 브리튼인의 소박한 요새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브리튼인은 요새를 지을 장소를 현명하게 골랐고, ‘London’처럼 이런 곳은 종종 새 마을의 중심이 되어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와 현대까지 커졌습니다. 1916년 독일군의 공격에 맞선 놀라운 저항으로 유명한 프랑스 요새 도시 ‘Verdun’도 켈트어 ‘dun’이 붙은 고대 켈트 마을이에요. 로마가 골(Gaul)을 정복했을 때 이미 중요한 곳이었고, 이후에도 역사에서 주목할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이름은 ‘물 위의 요새(the fort on the water)’를 뜻하며, ‘Dundee’는 아마 ‘테이 강 위의 요새(the fort on the Tay)’일 겁니다.
영국 지도를 보면 라틴어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로마인이 브리튼을 정복할 때 붙인 이름들을 쉽게 골라낼 수 있어요. 북부의 ‘caster’, 중부의 ‘chester’, 서부의 ‘xeter’, 웨일스의 ‘caer’는 모두 라틴어 ‘castrum(군영, 요새)’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Lancaster’, ‘Doncaster’, ‘Manchester’, ‘Winchester’, ‘Exeter’, 아서 왕의 고대 수도 ‘Caerleon’ 같은 곳에 로마 군영이 흩어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죠.
이곳에서 로마 관리와 병사들은 가족과 함께 살며, 이탈리아 고향처럼 교회, 극장, 목욕탕을 지었어요. 브리튼 귀족은 로마인의 삶과 사고를 배웠고, 로마 성직자와 수도사들이 나가 브리튼인에게 드루이드교가 잘못됨을 깨우치며 기독교를 가르쳤습니다.
장소 이름에 흔히 붙는 또 다른 라틴어 어미는 ‘strat’, ‘stret’, ‘street’입니다. 이런 곳을 보면 로마인이 제국 곳곳에 지은 ‘viæ stratæ(로마 도로)’가 지나갔음을 알 수 있어요. 지금도 영국 곳곳에 로마 도로 유적이 남아 있고, 흔적이 없더라도 그 방향은 도로를 따라 늘어선 마을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Stratford’(Warwickshire), ‘Chester-le-Street’(Durham), ‘Streatham’ 등이 그 예입니다. 또 ‘port’와 ‘lynne’이 들어간 마을은 로마인의 항구와 무역 도시였음을 말해줍니다.
로마인이 브리튼을 떠날 때, 잉글리시인(English)이 그 마을에 다양한 이름을 붙인 건 흥미롭습니다. ‘ford’, ‘burgh’, ‘borough’로 끝나는 이름은 잉글리시가 브리튼을 장악한 뒤 처음 몇백 년부터 시작됐어요. ‘ham’과 ‘ford’는 ‘고향(home)’이나 ‘마을(village)’을 뜻합니다. ‘Buckingham’은 ‘Bockings의 고향(home of the Bockings)’으로, 서로 연관된 가족들이 살며 이름을 지켰던 곳이에요. 그 마을이 도시로 커져도 이름은 바뀌지 않았죠. 이제는 공동 목초지와 방목지를 나누는 큰 도시지만요. ‘Wallingford’는 ‘Wallings의 고향’이고, ‘ford’로 끝나는 곳은 대개 강이나 개울을 건너는 여울(ford)이 있던 자리입니다. ‘Oxford’는 고대 영어 ‘Oxenford(소들의 여울)’에서 왔어요.
‘borough’로 끝나는 도시는 오래됐지만, ‘ham’이나 ‘ford’로 끝나는 곳만큼은 아니에요. 잉글리시 정복 초기에는 ‘burhs’가 있었지만, 대개 요새화된 집일 뿐 마을은 아니었죠. 노르만 정복 전 마지막 100년쯤에서야 중요한 ‘burghs’나 ‘boroughs’가 나타납니다. ‘Edinburgh’는 초기 사례로, ‘Edwin의 도시(Edwin’s borough)’를 뜻합니다. 617~633년 영국 왕 에드윈(Edwin)이 세웠기 때문이에요. ‘boroughs’의 특별한 점은 자유 도시(free towns)였다는 겁니다. 자체 법정(courts of justice)을 갖고, 상위 법정에서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이런 이름을 가진 도시는 자유를 사랑하고 자체 법정을 얻으려 노력한 주민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르만 정복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다른 어미도 있지만, 영어는 아니에요. 아이에게 영국 지도를 주고 ‘by’나 ‘thwaite’로 끝나는 이름을 찾으라 하면, 대부분 영국 동부에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생각 깊은 아이라면 이유를 짐작할지도 몰라요. ‘by’와 ‘thwaite’는 데인족(Danish) 단어로, 데인족이 왕 알프레드(Alfred)와 월링포드 조약(Treaty of Wallingford)으로 평화협정을 맺고 정착한 동부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그 뒤 데인족은 영국에 살며 영국 민족의 일부가 됐고, 고유한 이름을 마을과 도시에 붙였어요. 그 이름은 지금도 남아, 영국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이 거친 종족을 떠올리게 합니다.
노르만인은 영국을 장악했을 때 장소 이름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어요. 우리 장소 이름 대부분은 로마와 고대 영어 시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장소는 바뀌었어도 이름은 그대로였죠. 도시는 그 시대부터 이름을 가졌지만, 강과 산 이름은 켈트 시대(Celtic times)에서 전해졌어요. 야생의 삶을 살던 브리튼인에게 이런 건 매우 중요했죠. 영국에는 ‘Avon’이라는 강이 몇 있는데, 고대 브리튼 이름입니다. ‘Usk’, ‘Esk’, ‘Ouse’ 같은 강도 브리튼인이 붙인 이름으로, 모두 ‘물(water)’을 뜻하는 브리튼 단어에서 왔어요. 흥미롭게도 ‘whisky’라는 이름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장소 이름이 생긴 다양한 방식에서 우리는 과거 역사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역사는 이 오래된 이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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