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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법'이라는 용어에 갇힌 문법공부

나룸이 2020. 3. 1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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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정법'이라고 부르는 문법용어를 외국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저 가정 또는 조건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conditional에 1,2,3라고 간단히 표시한다. 간단히 말해 가정1, 가정2, 가정3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문법 용어에 기가 죽는데다, 가정법현재, 가정법과거, 가정법과거완료는 세분화한 가정법의 문법용어에 또 좌절하고 만다. 이 세 가정법 용어는 if 조건절에 있는 동사의 시제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즉 가정법현재는 if+현재시제, 가정법과거는 if+과거시제, 가정법과거완료는 if+had+동사의 과거분사(had+과거분사를 합쳐 과거완료)이다. 가정법 문법용어가 외우는데 도움은 되지만, 원래 가정법이 의도하는 문형의 목적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if 절의 조건이나 가정에 따라 주절의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말하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 왜 각 조건에 붙여 그 문장을 썼는지 이해하는지가 문법용어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 (가정법과거를 지금도 "현재 사실의 반대"라고 설명하는 강사가 있다면 당장 그 학원을 끊으라 말하고 싶다)

 

영어를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말로  가정이나 조건을 어떻게 말하는지 보자.

 

상황1. 요즘 완연한 봄이라 나들이하기에 딱 좋다. 오늘도 산들바람이 불고 곧 하는 일을 마칠 수 있어서 바로 나들이를 갈 수 있다.
상황2. 요즘 완연한 봄이라 나들이하기에 딱 좋다. 하루 꼬박해도 일을 다 마치지 못할 것 같아서, 나들이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듯하다.
상황3. 요즘 완연한 봄이라 나들이하기에 딱 좋다. 작년 이맘 때는 봄이라기엔 너무 추워서 나들이는 고사하고 보일러를 틀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가정1.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 이 일만 마치면, 나들이 가야지.
가정2.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 오늘 일만 없으면, 나들이 가는 건데.
가정3.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 작년 이맘 때 날씨가 오늘처럼 화창했으면, 신나게 나들이 갔을 텐데.

 

가정1을 보면 오늘 나들이 가는 게 사실이나 마찬가지이다. 가정2는 도중에 일을 팽개치고 가지 않는 이상, 나들이 가기는 글렀다. 가정3는 오늘 날씨를 보면서 작년에 나들이 못 간 걸 회상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가정3은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이미 끝나버린 일이다. 위 가정2는 영어의 가정법과거에 해당하는데 문법용어처럼 과거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if 조건절이 현재 상황에서 바뀌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과거시제로 표시했을 뿐이다. 그저 현재 상황이 허락되지 않아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할 수 없다는 미련이나 아쉬움을 나타낸다. 즉 머리 속에서 조건이나 가정을 통해 현재 상황을 바꿔 보는 것이다. 거의 바꿀 수 없어도 말이다.

 

자, 그럼 위에 있는 그림을 통해 영어 가정법을 간단히 이해해 보자(물론 문법적으로 더 복잡한 부분도 있겠지만, 가정법이라는 기본개념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상황1. 학생이 현재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안 했을 때보다는 이 학생이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
상황2. 학생이 현재 공부는 안 하고 공원에 나가 놀고 있다. 공부를 안 했으니 시험에 어찌 합격하리오.(오늘 이 학생이 공부할 마음이 없다)
상황3. 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시험에 이미 떨어졌으니.(돌이킬 수 없는 이미 벌어진 결과)

 

가정1. If I study, I will pass. 내가 공부하면(공부하고 있으니), 시험에 (충분히) 합격할 거야.
가정2. If I studied, I would pass. 내가 시험 공부하면, 시험에 합격할 텐데(공원에서 노는 데 합격은 무슨. 이미 물건너 같다. 에헤라디야).
가정3. If I had studied, I would have passed. 내가 시험기간에 공부했으면, 시험에 합격했을 건데(집에 가서 말하면 부모님이 실망할 거야).

 

이렇듯 가정문(나는 이 용어가 맞다고 생각한다)을 왜 쓰는지 그 정황을 파악해야 한다. 무조건 문법용어와 문형을 달달 외우면 시험에서 몇 문제 더 맞출 수는 있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가정법 대신 가정문, 가정법현재, 가정법과거, 가정법과거완료 대신, 가정문1, 가정문2, 가정문3 라고 불러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각 가정문을 대할 때 내 상황으로 여기면 복잡하게 보이는 구문을 굳이 외우는 수고는 덜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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