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글자나 수를 익히는 데 전혀 막힘이 없었다. 맞춤법에 맞게 글씨를 잘 쓰는 것 못지않게 계산도 잘했다. 자기 왕국은 물론이고 주변 나라들의 역사까지 꿰뚫고 있었고, 아무리 어려운 지리 문제를 내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바느질과 자수, 뜨개질, 그림 솜씨 또한 훌륭했으며, 5개 국어로 시를 읊을 수도 있었다. 공주는 수학과 식물학, 천문학으로도 모자라 법학까지 공부했다. 요컨대 공주의 지식은 끝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요정들을 대모로 둔 덕분이었다.
이 밖에도 공주는 여러 가지 소양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바이올린, 치터(독일・오스트리아의 현악기-옮긴이), 교회 오르간, 대형 하프, 구금(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작은 악기-옮긴이), 페니 휘슬(금속과 나무로 만든 피리 형태의 악기-옮긴이) 등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었다. 심지어는 하모니카 불 듯 빗으로 연주도 할 수 있었다. 또한 노래를 부를 때는 꾀꼬리와 같았고, 춤을 출 때는 나비와도 같았다.
공주는 이날 궁에서 사방팔방을 쉴 틈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이 황소 한 마리를 통째로 꼬치에 꽂아 굽고 있는 주방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또 아무도 없는 궁 알현실에 들어가서는 단상에 나란히 놓인 황금 옥좌들과 벽에서 무지갯빛을 뽐내며 반짝이는 화려한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로 실내 장식품으로 쓰임-옮긴이)를 구경했다. 그다음에는 흉벽으로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아버지의 왕국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자 공주는 탑 안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서는 좁고 기다란 창틈으로 아래쪽 뜰을 내려다보았다. 탑이 어찌나 높던지 저 밑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생쥐만 하게 보였다. 공주는 다시 탑에서 내려와 쉴 새 없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들만 골라서 돌아다녔다. 그러다 결국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고탑의 문 앞까지 오고야 말았다.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공주가 순간 놀라는가 싶더니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자물쇠에 열쇠가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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