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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에 납치되어 폼페이에 노예로 끌려온 그리스 소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나룸이 2020. 6. 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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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목을 조르는 헤라클레스

 

그리스 노예 소년 아리스톤은 그림을 그리는 손길로 분주했다. 소년이 서 있는 곳은 표면이 매끄러운 벽 세 개로 둘러싸인 작은 방 안이었다. 나머지 벽쪽은 안마당을 향해 탁 트여 있었다. 작은 분수에서는 물줄기들이 뿜어져 나왔고, 그 뒤로 눈부시게 청명한 이탈리아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었다. 기둥들 사이로 빛이 통과하면서 시멘트 바닥에 그림자를 선명하게 드리워 놓았다.

 

알케스티스 시신 옆에서 타나토스와 싸우고 있는 헤라클레스(1870), 프레더릭 레이턴

 

이곳은 아리스톤의 주인이 지내는 방이었다. 아리스톤은 벽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고, 두 벽면은 이미 화려한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용맹한 헤라클레스의 위대한 과업들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림 속 헤라클레스는 사자의 목을 조르거나, 무시무시한 히드라의 목을 치거나, 난폭한 멧돼지를 어깨에 메고 있거나, 광포한 말들을 길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리스톤이 그리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가장 훌륭한 과업이었다. 바로 헤라클레스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로부터 알케스티스(테살리아의 왕 아드메토스Admetos의 왕비. 남편 대신 죽었으나 헤라클레스가 이승으로 데려왔다고 한다-옮긴이)를 구하는 장면이었다. 아리스톤은 영웅 헤라클레스를 거대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렸다. 육중한 몸의 탄탄한 근육들에 윤기가 흐른다. 한 손에는 곤봉을 질질 끌고, 다른 쪽 어깨에는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걸쳤다. 헤라클레스는 알케스티스를 저승에서 데리고 나가면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땅바닥에는 온몸에 멍이 든 타나토스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등에는 박쥐 날개처럼 생긴 검은 날개 한 쪽이 부러진 채 매달려 있다. 타나토스는 일그러진 얼굴로 헤라클레스와 알케스티스를 노려보고 있다.하늘에는 생명의 군주 아폴로 신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하지만 아폴로 그림은 아직 절반밖에 그리지 못했다. 그 신의 형상만 대강 그려놓았을 뿐이다. 아리스톤은 작은 붓으로 재빨리 색을 입혀 나갔다. 아리스톤의 눈은 아폴로 신이 내뿜는 불과 함께 이글거리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아리스톤은 붓을 놀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름다움의 신이자 헬라스(고대 그리스인이 자기 나라를 이르던 이름-옮긴이)의 신이며 자유의 신이시여. 제게 힘을 주세요!”

 

 

[책보요여 - 그리스 노예 소년과 폼페이] 책보요여, 전자책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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