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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려느냐......, 여기서 머물겠느냐....... 임금은 묻지 않았다. 그날 어가행렬은 강화를 단념하고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행렬이 방향을 바꾸자 백성들이 수군거렸다. 어린아이들도 강화가 아니라 남한산성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창졸간에 행선지가 바뀌자 기휘들이 먼저 흩어졌다. 말편자를 갈아 박는 틈에 기휘들이 깃발을 팽개치고 먼저 흩어졌다. 사대는 달아나는 자들을 쏘지 않았고, 달아나는 자들을 잡으러 쫓아갔던 군사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세자가 젖은 버선을 갈아 신는 사이에 견마잡이가 달아났고, 뒤쪽으로 쳐져서 눈 위에 오줌을 누던 궁녀들은 행렬로 돌아오지 않았다. 피난민들이 의장과 사대에 뒤섞였고, 백성들이 끌고 나온 마소가 어가에 부딪혔다. 행렬을 따라가서 살려는 자들과 행렬에서 달아나서 살려는 자들이 길에서 뒤엉켜 넘어지고 밟혔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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