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천재 이세돌9단을 꺽으면서 ‘인공지능(AI)’ 바람이 세계를 휩쓸었다. 고차원적이고 직관적인 사고가 필요한 바둑조차 인간이 컴퓨터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인공지능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처음 인공지능을 처음 접한 것은 1991년에 개봉한 SF 영화 <터미네이터2>에서였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연기한 터미네이터 ‘T-800’ 모델 사이보그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이다. 터미네이터가 존코너에게 자신의 스펙(?)을 설명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살아있는 피부로 덮인 금속 골격에 인공두뇌를 갖춘 유기체다.”
“내 머리속 CPU(중앙처리장치)에는 신경 회로망이 있다. 그래서 학습이 가능하다.”
*신경 회로망(뇌신경계를 모델로 한 컴퓨터의 정보처리시스템)
영화 초반에는 차가운 살인기계에 불과했던 터미네이터는 존코너와 교감하고 언어와 윤리를 배우면서 진짜 인간을 닮은 존재가 되어 간다. 영화 말미에서 터미네이터는 눈물을 흘리며 붙잡는 존코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네가 우는 이유를 알겠다.”
이 대사를 듣고 나는 ‘인간처럼 신경망을 가진 두뇌를 갖춘데다 미묘한 감정까지 읽을 수 있는 인공지능기계라니...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이 대단하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24년 동안 세상은 크게 변했다. 이 기간에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기계와 인간의 융합은 이제 더 이상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꿈을 적극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사람을 한 명 꼽자면 구글에서 인공지능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다. 그리고 이번에 크레센도에서 번역 출간된 <마음의 탄생>에서 커즈와일은 인간의 뇌, 특히 신피질의 작동 원리를 역분석해 터미네이터에 탑재된 인공두뇌과 같은 인공신피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는 주요 질문들은 이렇다.
인간의 뇌를 리버스엔지니어링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인간의 지능를 복제하거나 또는 과감하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결국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될 것인가?
‘지능(intelligence)’란 무엇이고 ‘의식(conscious)’은 또 무엇일가?
이 질문들은 해답을 구하기 어려운 매우 심오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마음의 탄생>에서 레이 커즈와일은 물리학, 화학, 신경과학, 컴퓨터 공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다각적으로 분석해 흥미롭고 통찰력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특히 커즈와일은 신경과학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인간 두뇌의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한다거나 인간과 기계가 융합될 것이라는 커즈와일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뇌의 신피질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메커니즘(패턴인식마음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첫 4~5장만 읽어도 매우 신선한 ‘지적 자극’을 받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발췌한 대목 몇 개를 인용한다.
“뇌에는 이미지, 비디오, 소리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장치가 없다. 우리 기억은 패턴의 나열로 저장된다.”
“신피질의 주요 기능은 계층적으로 구성된 정보의 패턴을 다루는 것이다.”
“훌륭한 인공지능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과학적 지식과 데이터의 정확한 ‘코딩’과 패턴인식 마음이론에 기반한 ‘계층적 지능’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 자체로서 컴퓨터(코딩)을 활용하는 인간(계층적 기능)을 상징한다.”
“복잡한 인간의 뇌를 성공적으로 모방한 컴퓨터라면, 인간과 같은 수준의 의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제목에 ‘뇌’나 ‘지능’이 아닌 ‘마음’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마음은 ‘의식을 가진 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영적인 기계’다 아직은 우리의 능력을 확장시켜주는 기계들이 대부분 몸과 뇌 밖에 존재하지만, 이제 인간과 밀접하게 결합할 수 있는 도구들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가 이뤄낸 마지막 발명-신피질-은 결국 인류가 이뤄내야 할-울트라지능기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특이점(sigularity)’이나 ‘수확가속법칙(law of accelerating returns)’의 개념이 낯설지 않은 독자들은 <마음의 탄생>을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가 생소한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두통을 동반하는 책이 될 수도 있겠다. 내 경우 자연과학 분야에 생소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즐겁게 책장을 넘겼다.(머리가 아플 때는 내 뇌의 뉴런에 있는 패턴인식기들이 작동하는 상상을 했다.) 우리 인간의 뇌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마음의 탄생>을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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